불꽃놀이 한가운데에서 폭발음에 익숙해진다는 야심찬 훈련의 효과가 의외로 굉장하다. 귀가 저릿할 정도로 한참을 노출되어 있던 덕분인지, 이제는 근처에서 총소리는 물론이고 폭탄이 바로 옆에서 터지는 소리에도 이전처럼 놀라지 않는다. 역시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야. 하지만 적응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선물이야.” “갑자기 무슨……?” “이건 로키 것이니까 전해주...
“야, 어지간히 해라, 진짜!” 귀마개를 뚫고 들어오는 우렁찬 외침. 로키와 나의 싸늘한 눈이 한 방향을 향한다. 단전에서부터 야무지게 끌어올린 목청을 터뜨린 빌이 일생일대의 용기를 내고 있다는 것이 아주 확실하게 느껴진다. 자꾸 미끄러지는 손은 놓아두고 염력으로 귀마개를 슬쩍 밀어낸다. “사진 찍자고!” “나 이제 잘 들려.” “……그럼 얼른 와…….” ...
연달아 현장을 다녀온 몸이 물에 젖은 솜처럼 무겁다. 토니가 타워에 오지 않은지 한 달 째. 로디가 토니의 자리를 메우기 위해 사방팔방으로 출장을 다니고, 현장 파견은 모두 비전과 내 차지가 된 것도 한 달 째. 복귀해 병동에서 처치를 받던 도중에 다시 달려 나간 적도 있고, 돌아오던 길에 퀸젯을 돌린 적도 있었으며, 로키가 유난히 취약한 새벽에 출동 명령...
한국이 아니라서 아쉬운 것의 순위를 매겼을 때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실시간 오프라인 덕질을 할 수가 없다는 것. 내 가수님이 컴백을 하셨는데 나는 왜 라이브를 듣지 못해? 콘서트 언제 와? 우울하게 핸드폰을 붙잡고 하염없이 영상물을 돌려보는 내가 처량하다. 우울하다, 우울해. 나도 저 자리에서 환호하는 한 마리 새우젓이 되고 싶다고, 어...
15층에 도착하기 위해 필요한 시간은 눈을 한 번 깜박이는 찰나보다도 짧다. 공간을 건너 가장 먼저 내 방으로 향한다. 15층에서 내가 유일하게 지켜야 할 존재가 바로 그곳에서 아직 잠을 자고 있을 테니. 재빨리 공간을 훑지만 그가 없다. 빠르게 염력을 전 층에 펼친다. 기척이 잡히는 로키의 방으로 다시 순간 이동. 로키와 마주보는 사이로 낯선 이의 뒷모습...
새벽이 쌀쌀하다. 나는 우리나라만 사계절이 뚜렷한 줄 알았더니 그것도 아닌가봐. 지구 반대편으로 건너와도 가을은 꼬박꼬박 오고 일교차도 굉장하구나. 운동을 끝낸 뒤에도 공기가 싸늘하다. 이제 절대로 밖에서 반팔 티셔츠 한 장만 입고 달릴 수는 없겠다. 져지의 지퍼를 목 끝까지 끌어올리며 잰걸음으로 15층에 도착한다. 오늘도 변함없이 서쪽 홀에서 기다리고 있...
짧게 숨을 들이쉬며 감전이라도 된 양 몸을 떤다. 캄캄한 시야. 사위를 파악하기도 전에 이마에 익숙한 입술이 닿는다. 한층 더 꼭 끌어안으며 등을 도닥이는, 역시 익숙한 손길. “쉬……괜찮아, 괜찮아.” 낮은 목소리. 서서히 어둠에 익숙해진 눈에 낯익은 올라프 무늬가 들어온다. 편안한 품에서 안도의 숨을 내쉰다. 괜찮대. 다 괜찮대. 손 안에 가득 잡힌 그...
“어……좋은 아침.” 쟤가 대체 어쩐 일이야. 어정쩡한 자세로 일단 인사를 한다. 마치 커튼을 걷는 것처럼 손을 한 번 휘젓자 그를 둘러싸던 홀로그램이 지워진다. 소파에 여유롭게 기대는 각도가 깊어질수록 그의 얼굴에 걸린 미소도 짙어진다. “네 로봇은 여기 없으니 꺼져.” 로키의 어투에서 찬바람이 쌩쌩 몰아친다. 싸늘하기가 겨울 삭풍에 비할 바가 아니다. ...
캄캄한 시야. 마른 침을 삼키며 긴장을 숨기려 노력한다. 떨지 말자. 무엇을 보게 되든지 절대 소리 지르거나 날뛰지 말자. 의연하게, 멋있게……그러니까 내가 뭘 볼 수 있기는 한 건가? 꽤 기다린 것 같은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한쪽 눈만 슬쩍 떠본다. 시야를 가득 채우는 완다가 씩 웃는다. “긴장 풀어.” “나 엄청 준비하고 있었거든.” “그래 보이더...
작게 진저리를 치며 깨어난다.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손목을 더듬는다. 밤새 차고 있어도 매번 서늘한 냉기가 전해지는 두꺼운 수갑이 짐작한 자리에서 충실하게 만져진다. 사슬을 따라가 로키의 손목에도 제대로 채워진 것을 확인한다. 겨우 떨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마음을 가라앉힌다. 팔다리를 휘저으며 발작을 하듯 잠을 깨는 일은 이제 없다. 수면 중 잦은 기상...
로키와 마주 앉은 식탁 위로 긴장이 감돈다. 고개를 비딱하게 기울인 채 산적처럼 소시지를 물어뜯으며 그에게 시선을 고정한다. 그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그는 왕자님답게 얌전히 입을 다물고 꼭꼭 씹는다. 접시로 시선이 떨어졌다 다시 올라와 마주칠 때마다 예쁘게 웃는 건 덤이다. 얘가 지금 노리고 끼를 부린다는 걸 알고 있다. 내가 신경을 쏟고 있는 걱정거...
Shearoset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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